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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를 위한 최고의 미덕은 봉사

호암 이병철 선생은 1910년 2월 12일 경상남도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에서 부친 이찬우 공과 모친 안동 권씨의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대대로 유학을 숭상하는 선비의 집안으로 경제적으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호암은 강직한 가풍 속에서 비교적 유복한 소년시절을 보냈다.

다섯 살 때부터 조부인 문산 이홍석 공이 세운 서당 문산정에 다니며 한학을 공부했고, 열한 살 되던 해에 진주에 있는 지수보통학교에 편입, 이듬해에는 서울의 수송보통학교로 옮겨 수학했다. 그 후 중동중학교에서 신학문을 공부했으며, 1926년 사육신의 한 분인 박팽년의 후손 박두을 여사와 결혼하였다.

결혼 후에도 학업에 전념하던 호암은 1930년 4월 일본으로 유학하여 와세다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였다. 하지만 호암은 당시 세계적인 대공황의 소용돌이 속에서 극심한 경제혼란이 빚어낸 사회상을 목격하게 되고, 여기서 느끼고 생각한 바가 많아 동경의 유학생활을 중도에 그만두고 귀국하였다.

  • 청년 이병철
  • 청소년 시절의 호암선생
  • 호암이 어린시절 한학을 배우던 문산정(의령군 중교리)